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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 구멍 난 채무자 보호…갑질하는 파산관재인

글쓴이
전라남도금융복지상담센터
작성일
2016-12-15
조회수
2,434

죽은 전 동거인 재산·동일 서류 반복 요구 등…"파산관재인 의존한 구조 탈피해야 "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 A씨(50대 남성)는 대출 원리금을 다 갚지 못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건설 현장 막일로는 밀린 대출금을 갚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 법원에 파산·면책 신청을 했다. 얼마 안 가 파산관재인이란 사람이 자신의 은닉 재산 여부를 확인한다며 면담 요청을 했다. A씨는 숨겨놓은 재산은커녕 먹고살 돈도 없는 처지라, 별일 없이 면담이 종료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의 요구를 받았다. 잠깐 함께 살았다가 분가한 옛 동거인의 재산 서류를 떼어 오라는 것이다. 수소문 끝에 전 동거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걸로 끝난 줄 알았지만, 파산관재인은 그 동거인의 상속자 재산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A씨는 이런 요구가 과도한 것 같아 상담센터에 신고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파산 신청자의 재산이나 소득 정도를 조사하는 '파산 관재인'이 채무자를 상대로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하는 등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사돈에 팔촌, 잠깐 같이 살았던 동거인의 재산 내역을 요구하는 것 외에도 같은 서류를 반복해서 가져 오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방법원 판사가 지정하는 변호사가 해야할 파산 관재인 역할을 다른 직원이 대신 하다 보니 같은 요구를 두 번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남 금융복지상담센터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50대 여성은 최근 이전에 제출했던 의료 관련 서류를 또다시 내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처럼 파산관재인의 '과도한 뒷조사'가 도마 위에 오르자 정부 예산으로 관재인들이 갑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된 상황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금융복지상담센터나 서민금융진흥원은 취약계층의 파산관재인 선임비를 일정 부분 대신 내주고 있다.  
 
경기도 서민금융센터 관계자는 "파산 신청자의 재산이나 소득 정도를 조사하는 파산 관재인이 채무자를 상대로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지원한 돈으로 선임비를 받고서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금융복지상담센터 관계자는 "파산관재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몇몇 센 분들이 있다"며 "이런 기질이 강한 관재인 때문에 파산 신청자가 우울증에 빠지거나 파산을 아예 취소하려고 하면 센터에서 판사에게 자제 요청을 한다"고 말했다. 
 
파산관재인의 과도한 추궁 행위는 소멸시효 완성채권 부활을 금지하고 과도한 채권추심을 금하는 등 채무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려는 금융당국의 기조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지난 9월 금융위원회는 불법 추심행위를 할 경우, 해당 채권추심인 외에도 그 채권을 보유한 금융회사, 대부업자와 업무를 위탁한 채권추심업자에게도 책임을 부과하기로 했다. 지난 11월에는 하루 2회까지만 채권추심 방문·전화를 허용하는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이 도입됐다.  
 
이런 추세와는 반대로 법원의 채무자 보호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자, 전문가들은 파산관재인이란 제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기질이 강한 파산관재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란 것이다. 
 
파산·면책은 각 지방법원 판사의 판단에 따라 승인과 기각으로 갈리는 데, 판사는 파산관재인의 보고서를 감안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 때문에 파산 신청자나 정부 상담센터는 파산관재인에게 불만을 말하기 어렵다. 
 
또한 법원이 채권자 편향적 조사와 판결하는 분위기도 문제란 지적이다. 재산을 은닉한 구체적 정황이나 증거가 없는데도 파산·면책을 받으려는 사람을 무조건 의심하고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정명 이현욱 변호사는 "파산관재인이 일을 많이 하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며 "고통받고 있는 채무자의 목소리가 여론화되지 않고 있는 반면, 너무 채권자 위주의 시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법원도 그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평가했다.